THE PEOPLE 10 -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부천 성모병원 위쪽에 성가소비녀회((聖家小婢女會)’라는 수녀님들의 공동체가 있다. 라틴어, 이탈리아어 등 외국어로 된 수도회 명칭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순 한자로 이루어진 수도회 이름을 가진, 그래서 조금은 생소한 느낌이 드는 성가소비녀회는 로마 가톨릭계의 방인(邦人) 수도회이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聖家庭)을 섬기는 작은 여종들의 공동체라는 뜻으로 1943,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성재덕 베드로(Pierre Singer) 신부에 의해 서울 혜화동에 설립되었으며, 부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55년 서울 중림동에 있던 성가보육원을 부천으로 이전하면서부터이다.

광복절 연휴가 끝난 지난 17, 수녀님들의 안식처인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를 찾았다. 야트막한 원미산 자락에 성가요양원과 나란히 서 있는 수녀원에 첫발을 내딛자 엄숙함, 경건함과 함께 어떤 성스러운 기운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입구에 있는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후 수녀원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관구장이신 유엘리사 수녀님과 평의원 수녀님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1시간 30분 정도 유쾌한 인터뷰를 하면서 다음 세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째는 수녀님들의 평균 연령이 60세를 넘는다는 거였다. 입회하는 젊은 수녀님들이 그만큼 적다는 뜻인데 노령화 사회 추세는 종교계도 피해갈 수 없는 모양이다. 지금 계신 수녀님들이 더 오래 건강하게 사시라는 주님의 뜻이 아니겠느냐고 덕담 아닌 덕담을 건네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수도자 특유의 청빈한 삶이었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지켜나갈 수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끝까지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활하다가 삶을 마감한다는 수녀님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 죽어서까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아등바등하는 속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부끄러웠다. 특히 수도회에서 운영하던 소명여자중고등학교와 성가병원(현 부천성모병원)을 각각 인천교구와 서울교구에 무상으로 양도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성가소비녀회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셋째는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강한 실천력이었다. 수녀님들은 자신들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손을 내밀고 그들과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한다. 날로 악화하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서, 건강한 지구 생태계를 위해서,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도 수녀님들은 기꺼이 시위 행렬에 동참한다. 지금껏 기후 위기를 외치고 제로웨이스트를 부르짖으면서도 막상 실천에 옮기지 못한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유 엘리사 수녀님(관구장, 오른쪽에서 2번째)과 평의원 수녀님들(왼쪽부터 서 로제 수녀, 손 다니엘라 수녀, 박 마리안또니오 수녀)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유 엘리사 수녀님(관구장, 오른쪽에서 2번째)과 평의원 수녀님들(왼쪽부터 서 로제 수녀, 손 다니엘라 수녀, 박 마리안또니오 수녀)

 

안녕하세요! 콩나물신문 THE PEOPLE입니다. 콩나물신문은 인권, 환경, 생명, 여성, 복지 등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들을 개선하여 더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바쁜 일정 중에서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수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성가소비녀회라는 명칭이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성가소비녀회는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든 수도회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성가소비녀회(聖家小婢女會)19431225, 파리 외방전교회[Paris Foreign Missions] 소속 성재덕 베드로(Pierre Singer, 1910~1992) 신부에 의해 서울 혜화동에 설립되었습니다.

성재덕 신부(1910~1922)
성재덕 신부(1910~1992)

성가(聖家)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의미하며, 소비녀(小婢女)하느님의 종이라는 뜻으로 성가소비녀회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처럼 세상의 가난한 이들 가운데 더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강생(降生)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조직된 수도회를 말합니다.

1943년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일제강점기에 있었습니다. 설립자 성재덕 신부는 전쟁으로 전사자, 부상자, 굶주리고 헐벗은 고아들이 생길 것을 예측하고, 교회가 세상에 예수님의 인자하신 얼굴을 보여주고 도와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창립 영감에 따라 설립자는 혜화동 본당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여성 가운데 2명의 지원자를 받아들여, 19431225일 성가소비녀회를 설립하셨습니다.

성가소비녀회는 1944년 혜화동 본당 내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45년에 정식 수련이 시작되어, 1947110일에 6명의 제1회 소비녀들이 첫 서원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당진에 있는 구합덕성당 파견을 시작으로 교회와 사회의 새로운 요구에 응답하는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먼저 돌보고, 전쟁고아들, 부상자, 전쟁으로 파괴된 가족들과 노인들에게로 파견되었습니다.

성가(聖家)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의미하며, 소비녀(小婢女)는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종이오니….”라고 하신 말씀과 복녀 김 골롬바, 김 아녜스 자매가 재판장 앞에서 대답한 것을 생각하여 ‘소비녀’라 부르기로 했다. (사진) 김골롬바와 아녜스 자매(장발 작)
성가(聖家)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의미하며, 소비녀(小婢女)는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종이오니….”라고 하신 말씀과 복녀 김 골롬바, 김 아녜스 자매가 재판장 앞에서 대답한 것을 생각하여 ‘소비녀’라 부르기로 했다. (사진) 김골롬바와 아녜스 자매(장발 작)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는 언제 설립되었으며 현재 몇 분의 수녀님이 활동하고 계시는지요? 혹시 수녀님도 정년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퇴임 후 생활은 어떻게 하시고 또 부천에서 활동하시는데 왜 인천관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지도 궁금합니다.

 

1970~80년대 본회는 사도직이 다양해지고 회원 수가 증가하면서 수도회 정체성 확립과 쇄신이 요청되었습니다. 이에 1976, 소비녀들의 삶의 길잡이인 회헌과 회칙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개정되었으며, 1986, 새 교회법에 조명하여 현 회헌과 규칙으로 새롭게 개정하여 교회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또한 1987, ‘3개 방인수도회 설립은사 식별 워크숍의 영향으로 1988년에는 전 회원 대상 카리스마 식별수도회 식별연례 피정을 실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식별의 여정은 수도회가 다시 설립 카리스마(은사)로 돌아가게 한 섭리적 역사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이후 카리스마에 따른 사도직 식별을 통해 1990년 서울 성가병원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 병원(현 서울 성북구 종암동 성가복지병원)으로 전환하고, 1992년 소명여자중고등학교를 인천교구에 무상으로 양도하였습니다. 또한 2000년에 들어서 서울과 부천을 중심으로 본당 사도직 식별을 거쳤고, 2001년 가난한 지역 안에서 지역공동체(요셉공동체, 공동사목분원)를 시작하였으며, 2007년 가톨릭대학교 부천성가병원을 서울대교구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에 무상 양도하는 등 지속적인 쇄신의 여정을 단행해 왔습니다.

2008년에는 오랜 기도와 숙고 끝에 두 관구를 설립하여 보다 나은 복음 선포와 강생의 영성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우리 자신과 공동체가 쇄신되어 증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한국을 동서로 나누어 동쪽에 속하는 공동체와 사도직은 의정부 관구로, 서쪽은 인천 관구로 하였습니다. 수녀원이 교구 소속이어야 하기에 공동체가 있는 곳의 교구명을 따르게 되어 부천에 있으면서도 인천관구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수도회 전체 회원은 478명이며 그 중 인천 관구 회원은 218명입니다. 인천 관구는 부천지역에서 반 이상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도자들에게 퇴임이란 없습니다. 노년이 되어 쇠약해져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생활하게 되면 그곳에서도 역시 수도자로서의 삶을 이어갑니다.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성가소비녀회가 부천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75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의 활동과 현재 하고 계신 일들을 소개해 주세요.

 

1955년 서울 중림동에 있던 성가보육원을 소사로 이전하면서 부천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당시에 미국 가톨릭 구제회(N.C.W.C)의 총재 안 캐롤(George M.Carroll, ) 주교의 후원으로 현재의 부천시 소사동 1번지에 보육원의 터전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이어서 1958년에는 서울 동작동에 있던 성가양로원을 인수하여 부천으로 이전하였고, 1962, 소명여자중고등학교를 인수하여 운영하였으며, 1983, 서울 미아리(현 종암동) 소재 성가병원을 부천으로 이전하는 등 우리 성가소비녀회는 부천지역을 터전으로 많은 사도직을 수행해 왔습니다.

현재 성가소비녀회 수도자들은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6개국에서 선교활동)에서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복지 분야에서는 요양원, 복지병원, 복지의원, 공부방, 지역아동센터, 지적 장애인 생활시설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의료 분야에서는 전국 각 지역의 병원에서 원목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생태, 환경 분야에서는 배론 생태공동체, 용문 생태공동체, 시흥 도창동 농장 등의 운영을 통해 자연 안에서 기도와 노동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며 땅을 살리고 보존하는 생명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며, 이 밖에도 북한선교, 장상연합회 JPIC 분과위원회 연대활동, 본당 선교, 무료급식, 알코올중독치유 등을 통해 강생(降生)의 예언적 사명을 수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성가병원 부천 부지.
가톨릭대학교 성가병원 부천 부지.

 

, 전국 각지에서, 또 해외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수녀님들이 우리 부천에서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리 인천관구 수녀님들은 관구 본원이 위치한 이곳 부천에서 수도회의 카리스마에 따라 가난한 이웃, 그중에서도 더 가난하고 미소한 이들과 함께 하는 활동과 시대의 징표를 바라보며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수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2007년에 성가병원을 서울대교구에 무상 양도한 후에도 현재 병원의 사회사업팀과 원목 팀에 수녀들이 있으면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사회적 취약계층의 신체적, 정서적, 영적 치유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또한 병원에는 알코올 중독자들과 그 가족의 회복을 위한 알코올 치료센터가 있습니다. IMF 여파로 실직과 파산을 하며 부천에 알코올중독자가 급속히 늘어 가정이 파괴되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수녀님들이 직접 중독상담과 치료에 대해 배워 2000년에 알코올 치료센터를 개설하여 중독자들의 치료, 재활과 가족들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낮 병원 치료 형태를 도입하여 출퇴근 형식으로 치료를 행했는데 입원 치료보다 훨씬 회복률이 높았습니다. 중독자들이 자신의 존엄을 찾고 가족들과 함께 삶을 향상해 가도록 상담, 치료교육, 후속 교육, 가족 모임, 가정방문 등을 실행하였고, 단주를 유지하며 술로 인한 고통에서 빠져나와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꾸준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알코올치료센터에서 8주 치료교육 후 2년 동안 단주하며 후속교육까지 마친 분을 축하하고 있다.
알코올치료센터에서 8주 치료교육 후 2년 동안 단주하며 후속교육까지 마친 분을 축하하고 있다.

 

우선 말씀드린 치유 활동 외에 둘째는 이주민센터 사도직 활동입니다. IMF 전후로 외국인노동자들이 대거 입국, 3D 현장에 투입되면서 이주민들의 인권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우리 수도회에서는 그들을 그 시대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로 인식하여 노동 현장을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삼정동(신흥동)에 이주민센터를 마련하여 노동 상담, 한국어교육 등의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19년 소사동으로 이전하여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60가구의 이주민 가족을 돌보고 있으며 의료비 연계 및 의료동행, 산모 교육, 한국어교육, 문화 및 역사 탐방, 야외나들이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주민들의 따뜻한 이웃인 쌩제 이주민센터에서 마스크를 전달하고 있다.
이주민들의 따뜻한 이웃인 쌩제 이주민센터에서 마스크를 전달하고 있다.

 

셋째는 탈북민 사도직 활동입니다. 우리 인천관구에서는 2011년 탈북민 사도직을 신설하고, 2012, 주택 미 배정자를 위해 소사동 아파트에 단기 쉼터를 개소하였으며, 이후 삼정동으로 이전하였다가 2021년 다시 원미동으로 이전하였습니다. 대상자는 하나원 퇴소 후 주택을 배정받았으나 이혼, 질병, 사기, 폭력 등으로 주택을 상실한 자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다른 쉼터에 들어가기 어려운 모자가정 중심으로 생활공간 제공, 일상생활 지원, 상담을 통한 심리, 사회, 정서적 지원, 모래놀이 상담 등 치료 프로그램 지원, 지역사회 적응훈련, 직업훈련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민 모자가정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수녀님
탈북민 모자가정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수녀님

 

넷째는 방문 사도직 활동입니다. 우리 수녀님들은 수도회의 정신으로 2004년부터 이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여 찾아내고 보살피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고 연대하기 시작하였으며,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소사, 원미, 오정 지역의 독거노인, 장애인 등 50~60가구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상담, 의료동행, 생활 지원, 시장보기 등 의식주 돌봄과 심부름, 말벗, 1회 센터 식사 제공, 레크레이션 프로그램 제공 등의 활동을 합니다.

다섯째는 거리 청소년 아웃리치와 가정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활짝 쉼터 운영입니다. 가정으로부터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위기 청소년들의 위기 상황에 대처하고, 이들에게 보다 안전하고 적절한 돌봄이 제공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천시 청소년 일시 쉼터인 별사탕과 연대하여 주로 가출 청소년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부천역에서 수도복을 벗고 사복 차림으로 청소년들을 만나며(매주 화~금요일 오전과 화목 오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청소년의 욕구에 따라 동행하는 방식으로 상담, 기관 연계, 경찰서 법원 병원 동행, 주 부식 피복 생필품 위생용품 등을 지원합니다. 수녀원에서는 아이들이 활짝 피기를 바라는 마음의 의미를 담아 수녀원에서 직접 소사동에 아파트를 마련하였습니다. 활짝은 기존의 가정 밖 청소년 쉼터의 공동생활과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쉼터에도 입소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이 머무는 대안 주거지로 그들이 원하는 개별 공간의 방을 내어주고 수녀들이 함께 살면서 직접 밥을 해서 먹이고 언제나 어머니처럼 기다려 주고, 버티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천역에서 밤에 학교 밖 청소년을 만나는 모습
부천역에서 밤에 학교 밖 청소년을 만나는 모습

 

여섯째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한 연대 및 실천 활동입니다. 지금 이 시대가 처한 가장 심각한 어려움은 기후 위기입니다. 그래서 관구에 JPIC 사무국을 두고 이 부서를 중심으로 기후위기 부천비상행동회의에 참석하고 캠페인 활동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728일에는 부천에서 첫발을 내디딘 도시숲 시민모임‘2050 탄소중립을 위한 자원순환 시민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와 미래세대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쓰레기 줍기부터 지속적으로 실천하면서 다양한 시민단체와 연대활동을 통해 기후 위기를 지역사회에 알리고 생태계와 생명을 살리고 회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와 실천행동을 담은 조끼를 만들어 입고 ‘기후위기 부천비상행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쓰레기 줍기를 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실천행동을 담은 조끼를 만들어 입고 ‘기후위기 부천비상행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쓰레기 줍기를 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대란 때 미혼모 자립단체에서 만든 마스크를 구입해 행정복지센터에 전달하고, 또 수녀님들이 직접 마스크를 만들어 기부하시기도 하셨는데 취지와 목적 등 조금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20202, 갑작스러운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의 가격 인상 및 수요부족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취약계층 및 기초수급자 지역 주민은 마스크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우리가 알고 있는 미혼모 자립단체의 미혼모들은 아르바이트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에서는 미혼모들이 만든 마스크 300, 150만 원어치를 구매하여 그들의 자립 및 생계에 다소나마 도움을 주고, 행정복지센터와 연계하여 취약계층과 기초수급자 가정에 이를 전달하였습니다.

한편 우리 수녀님들께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과 탈북민, 가난한 해외 국가를 위하여 약 4천여 개의 면 마스크를 직접 제작하여 전달하였습니다.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에서는 특별히 환경 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펼치고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 우리 성가소비녀회에서는 4년마다 한 번씩 총회를 열어 수도회의 활동 방향과 주제를 정하는데 작년 1210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제17차 총회에서는 부서지고 상처 난 내 백성을 회복하여라!”라는 주제를 정하고 통합 생태적 삶으로 대전환한다.”라는 결의안을 채택하였습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삶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지구는 모든 사람의 기본 욕구를 위해서는 풍요로운 곳이지만 인간의 탐욕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곳이다.”라는 간디의 말처럼 인간의 탐욕에 의해 오염된 지구는 기후 위기, 토양오염, 대기오염, 수질오염 등 치명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생태적 삶이란 삶의 방식을 인간 중심에서 생명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수도회에서는 자체적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단체와 연합하여 탈핵 운동, 제로웨이스트 운동, 기후 위기 비상 행동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은 땅과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으며, 토종 씨를 보존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은 땅과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으며, 토종 씨를 보존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탈핵 운동은 후쿠시마의 사례에서 보듯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핵 문제에 있어 아직도 많은 수의 국민들은 위험성을 인식하면서도 편리와 대안부재라는 이유로 탈핵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과다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는 지금의 사회경제 시스템과 이미 물질주의에 적응된 안타까운 현상이겠지만요. 그래서 탈핵 운동은 선전 위주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생활 운동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적게 소유하고 소박한 자유인이 되자. 이제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보다는 나부터 앞장서서 소비를 줄이고 생태적 삶을 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끔 깃발을 들고 띠를 두른 채 시위에 참여하는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위 현장에 나설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성가소비녀회는 1987년 민주화를 위한 단식 미사, 1995년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 1999년 바오로 사도직 파견, 20084대강 사업 반대, 2009년 용산 참사, 2012년 탈핵 운동, 2013년 제주 강정평화지킴이, 2015년 세월호 희생자 가족 연대, 2015년 총원 JPIC 사무소 개소, 2021년 인천관구 JPIC 사무소 개소 등 언제 어느 곳이건 지구와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응답하는 강생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수도자들은 예수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행동 양식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산 게 아니라, 늘 타인에게,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지켜나갈 수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게로 먼저 다가가셨고 늘 그분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우리 수도자들 역시 부서지고 상처 난 한 창조물로서 신음하고 아파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소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곧 우리입니다. 하여 때론 곁을 지키고, 때론 소리를 함께 내고 뭐라도 연대하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예수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남북철도 잇기 한반도 평화 대행진’ 중 인천•부천 구간을 함께 도보했다.
‘남북철도 잇기 한반도 평화 대행진’ 중 인천•부천 구간을 함께 도보했다.

 

2014416일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지금껏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은 안산에 공동체를 마련하고 희생자 가족과 함께해 오셨습니다. 이와 관련된 얘기 조금만 해 주세요!

 

2014,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고 극도의 고통에 빠진 가족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안산에 공동체를 마련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수도자들이 한 일은 그저 안산이라는 지역에 주민으로 함께 있으면서 유가족들이 부르면 대답하고, 인사를 건네면 받고, 아프면 집이나 병원으로 달려가고 진상 규명 목소리에 함께 소리를 보태는 정도였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울고 소리치며 만나고 모이고, 울다 못해 소리도 못 내고 신음하거나 불안에 갇혀 숨죽여 살아가는 곳에서 어떻게 슬픔을 달래드려야 하나, 과연 달래질 수 있는 슬픔일까? 라는 물음을 던지며 지금껏 그들과 함께해 오고 있습니다.

더불어 20182월 말부터는 선부동 성당 부속 건물에 소비녀들의 공동체 선부동 분원을 마련하고 자살 고위험군과 정신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대상자 및 그 가정과 함께하며, 조현병, 우울증, 공황장애, 은둔형 외톨이, 알코올중독을 앓고 있는 대상자들이 많이 있어 이들이 질병으로부터 빠져나오도록 돕는 활동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적 장애, 시각 장애, 신체장애(왜소증, 희귀질환, 와상) 등을 앓고 있는 분들과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는 노인, 장애인들을 찾아가 정서적, 경제적 지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인양된 목포 신항으로 내려가 희생된 영혼과 유가족들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염원했다.
세월호가 인양된 목포 신항으로 내려가 희생된 영혼과 유가족들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염원했다.

 

어느덧 인터뷰를 마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가난과 질병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희생하고 봉사하는 수녀님들의 삶을 통해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해 열린 제17차 총회의 주제는 부서지고 상처 난 내 백성을 회복하여라!”였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바뀌면 우리 수도회의 인식과 가치, 관점도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총회 주제에 맞게 삶의 양식을 전환하고 지구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연대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인천 관구는 부천지역을 기반으로 선한 사람들의 뜻과 행동을 그물코 삼아 그물망을 넓혀가도록 연결하고 보조하고 지원하고 촉진하려 합니다. 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가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으로 함께 살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 지구 생태계의 살아있는 순환을 파괴하는 세상에 맞서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한 예수와 함께 설립자 신부가 가르쳐 준 기뻐하라 소비녀의 삶을 계속 살아갈 것입니다.

 

기뻐하라 소비녀! (설립자 성재덕Pierre Singer 신부)

만일 너를 몰라주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어도 기뻐하라

만일 네 정신과 육신이 못생겨도 기뻐하라

만일 다른 사람들이 네 뜻을 반대해도 기뻐하라

만일 네게 천한 일을 시켜도 기뻐하라

만일 너를 쓰지 않아도 기뻐하라

만일 네 뜻을 청하지 않아도 기뻐하라

만일 너를 믿어주지 않아도 기뻐하라

만일 너를 말째로 두어도 기뻐하라

만일 너를 한 번도 찬양하지 않아도 기뻐하라

만일 너를 모든 사람보다 더 중히 여기지 아니하여도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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